설악산 오지를 걷는 사람들 ::: 산과 들꽃 이야기

  1. Home
  2. 산 이야기
  3. 설악산 강아지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동해일까 일본해일까 I 설악의 기암2

설악산 강아지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동해일까 일본해일까 I 설악의 기암2

산짱

설악의 기암 중에서

설악산은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중심에 우뚝 솟아서 수많은 암봉과 골짜기를 품으며 수려하고 장엄한 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려한 설악에서는 무언가를 닮은 모습의 많은 기암들을 볼 수 있는데 바위는 대체적으로 화강암류입니다. 화강암은 우리나라의 산천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암석인데 설악에서는 곳에 따라 흑운모화강암, 화강반암, 화강편마암, 홍색화강암 등이 분포하며 부분적으로 섬록암, 반암(斑岩)등이 보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모습의 바위에는 마리아 바위, 주먹 바위, 손가락 바위, 큰바위얼굴, 강아지 바위, 가슴 바위, 미사일 바위, 토끼 바위, 도깨비 바위, 피카츄 바위, 해피돼지 바위, 남근석 바위... 등등이 존재합니다. 
이 바위들 중에서 지난번 큰바위얼굴에 이어 이번에는 귀여운 강아지를 닮은 강아지바위를 소개하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기암들도 하나씩 이야기하겠습니다. 

 

 

강아지가 바라보는 바다는 동해일까 일본해일까?

강아지바위
강아지바위

귀여운 강아지바위입니다. 강아지는 돌아 앉아서 먼 동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동해바다는 국제적인 명칭이 일본해로 고정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일본바다에 떠 있는 우리의 독도를 가봐야겠습니다. 혹시라도 일본령이 되기 전에 말이지요. 

 

 

강아지의 꼬리에 대한 관찰

강아지 꼬리
강아지 꼬리

​꼬리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오른쪽 것이 강아지의 꼬리입니다. 앉아있는 강아지의 각도를 확인해 보면 그렇더군요.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면 직접 한번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천불동계곡에서 우측 산비탈로 빡시게 올라가면 됩니다~ㅎㅎ

 

 

강아지를 만나는 곳

강아지바위의 위치
강아지바위의 위치

강아지바위는 큰형제바위 1봉에 있습니다. 큰형제바위는 큰형제바위봉 또는 큰형제봉이라고도 부르는데 5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설악산의 지명에 대한 이해

설악의 지명은 오래전부터 불러오던 것 이외에 1957년부터 설악산관광안내서가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명소에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옛 문헌에서 지명을 찾기도 하고 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을 참고하면서 관이나 사진작가가 필요에 따라서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설악산 최초의 관광안내서가 1958년에 출간 되었다. 이후에는 전문산악인들이 설악산을 찾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서 부르던 이름이 지명으로 정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작명에는 무명에서 이름을 갖게 된 명승도 있었지만 예전부터 약초꾼이나 사냥꾼 등 설악을 삶의 터전으로 하던 주민들이 부르던 지명을 알지 못해서 혹은, 무시하고 새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등산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산꾼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져서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고 지명으로도 정착하기도 했지만, 산꾼들의 작명에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수긍이 가는 것과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섞여 있어서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지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설악산 일대는1956년까지 군사적인 이유로 출입금지였다. 1956년 군인을 따라서 처음 설악산에 들었던 최구현씨(崔九鉉,속초 승리사진관 운영·1987년)는 1957년부터 관광책자를 만들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설악산을 찾았다. 그 시절에는 길도 없고 명소도 비선대까지만 이름이 있을 뿐 대부분 주민들의 토속적인 이름만 있었다고 한다. 곳곳에 미쳐 수습하지 못한 시신 유골과 포탄 잔해들이 산재해 있던 상황에서 그는 관광책자 제작을 위하여 사진을 찍으며 문헌(주로 신흥사 사지)에서 지명을 찾고 많은 명소에는 직접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일제 때 금강산에서 사진을 배운 그는 새로운 이름을 금강산에서 따온 경우가 많아서 현제 설악산에 금강산과 같은 지명이 여럿인 까닭이 되었다.


​설악이란 이름의 유래에는 다음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 「동국여지승람」 또는 「증보문헌비고」(1908년)를 보면 "한가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지었다(仲秋始雪 至夏乃 消 故名焉)"라고 하였다.           
둘째, 조선 말기(헌종)의 여류시인 금원(錦園) 김씨의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1851년)에는 "바위의 색이 눈처럼 하얗기 때문에 설악이라고 이름 하였다(石白始雪 故名雪嶽)"라고 하였다.  
세번째는 이 시대를 살다 가신  노산 이은상 선생의 주장으로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의 우리 고어 '살뫼'가 변해서 설악이 되었다는 추정이다.  우리 고어 '살'은 신성·숭고·고결·생명을 뜻하는 말이며 설악의 '설'은 살의 음역이라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1481년 간행)에는 외설악 방면 만을 설악(雪嶽)이라 하였고 내설악 쪽은 별도로 한계산(寒溪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응형
SNS 공유하기
인기글HOT
최근글NEW
이모티콘창 닫기
울음
안녕
감사
당황
피폐

이모티콘을 클릭하면 이미지 주소가 복사되고, 이걸 댓글창에 붙여넣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