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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뒤흔든 '튤립' 파동

산짱

1593년 튤립 재배 관심 가진 식물학자… 희귀종 만드는 알뿌리 재배 성공했죠..

신비한 색의 튤립은 비싼 가격에 팔려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 되었어요.

부자될 욕심에 온 국민 튤립 사들였지만 하루아침에 가격 폭락하고 말았대요.

올해는 3월부터 유난히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져 이른 봄꽃이 온 세상을 화려하게 수놓았어요. 보기만 해도 유쾌한 개나리와 우아한 목련, 봄비처럼 흩날리는 벚꽃이 자태를 뽐내더니, 이제 고고한 튤립의 향연입니다. 4~5월에는 전국 놀이동산과 지방 곳곳에서 튤립 축제가 벌어지거든요. 그런데 '신(神)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튤립이 한때 집 한 채보다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아나요? 오늘은 튤립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 '영원한 애정'이에요. 원산지는 터키라고 알려졌어요. 튤립 모양이 이슬람교도들이 머리에 두르는 터번과 닮았다고 하여 터키어로 '톨리반(toliban)'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이후에 라틴어 이름 '뚤리빠(tulipa)'를 거쳐 지금의 '튤립(tulip)'이 되었지요. 터키 사람들은 튤립이 신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쟁에 나갈 때 속옷에 튤립 모양 수를 놓아 부적처럼 간직했대요. 술탄, 즉 왕이 사는 톱카프 궁전 정원에 튤립을 가득 심기도 했지요. 꽃을 재배하는 정원사는 가장 중요한 관리 중 하나로 여겼어요. 16세기에 터키는 오스만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답니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근의 튤립밭 모습이에요.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이지만, 지금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어요. /Corbis 토픽이미지.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근의 튤립밭 모습이에요.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이지만, 지금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어요. /Corbis 토픽이미지.

오스만제국이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에 드넓은 영토를 개척하면서 전성기를 누릴 때 튤립이 유럽에 전해졌어요. 유럽인들에게 튤립은 그저 처음 보는 동양의 신비한 식물에 불과했어요. 그들은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먹을 수 있는가' 혹은 '어떤 병에 효과가 있는 약초인가'를 더 궁금해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튤립은 그 뿌리가 양파처럼 생겼지만 맛이 없고, 약으로도 도통 쓸모없어 보이는 꽃이었어요.

그러다가 1593년 무렵, 튤립 재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어요.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시우스(Carolus Clusius)는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의 의학연구소에서 식물원을 만들고 있었지요. 그는 다양한 재배 방법으로 알뿌리를 교배하여 희귀한 튤립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색의 튤립, 줄무늬 튤립 등 신비로운 색을 가진 튤립을 만들었어요. 그는 아주 친한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튤립 알뿌리를 나누어 주거나 비싼 가격으로 판매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욕심을 불러일으켰지요. 식물원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튤립을 갖고 싶은 나머지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룻밤 새 수십 개의 알뿌리가 사라질 정도였지요. 튤립이 몰래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튤립을 갖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요.

17세기는 유럽 전체에서 네덜란드가 가장 강력한 부(富)를 누리던 시기였어요. 귀족들은 자신의 정원을 튤립으로 장식하기를 원했지요. 희귀한 튤립일수록 부유한 사람의 상징이 되었고, 튤립은 사회적 지위를 뜻하는 꽃이 되었어요. 하지만 너무 가격이 비싼 나머지 집 정원에 튤립 한 송이만 심는가 하면, 여러 개의 거울로 반사시켜 꽃이 많아 보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튤립의 이름도 다양해졌어요. '제독' '장군'에 이어 '제독 중의 제독' '장군 중의 장군'과 같은 거만한 이름도 등장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비쌌던 것은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영원한 황제)'라는 이름을 가진 줄무늬 튤립이었답니다. 흰색과 짙은 홍색이 어우러진 이 꽃은 좀처럼 구하기 어려웠거든요. 이 튤립의 알뿌리 1개가 자그마치 1만 길더라는 금액에 팔렸는데, 이 금액은 당시 최신식 수로와 차고, 250m짜리 정원을 갖춘 저택을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해요.

▲ (왼쪽)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에서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시우스가 다양한 재배법으로 희귀한 튤립을 만들어 냈어요. (오른쪽)‘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의 튤립이에요.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이 꽃 한 뿌리가 저택 한 채 값에 팔렸다고 해요. /위키피디아
▲ (왼쪽)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에서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시우스가 다양한 재배법으로 희귀한 튤립을 만들어 냈어요. (오른쪽)‘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의 튤립이에요.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이 꽃 한 뿌리가 저택 한 채 값에 팔렸다고 해요. /위키피디아

가격이 계속 오르자 희귀종의 알뿌리를 팔아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등장했어요. 그리고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돈만 생기면 알뿌리를 사들이기 시작했지요. 귀족이나 부유층에서 시작된 튤립 열풍은 식을 줄 몰랐고, 가난한 제빵사, 구두 수선공, 뱃사람, 하인, 농부, 굴뚝 수리공에게까지 이어지면서 온 나라가 튤립 알뿌리를 사들이느라 시끌벅적했어요.

그러다가 1637년 2월, 정말 큰일이 터지고야 말았어요. 아무도 튤립을 사려고 하지 않으면서 거짓말처럼 거래가 멈춰버린 거예요. 이제는 모두 자신이 가진 튤립을 팔겠다고 난리였지요. 하지만 원래의 비싼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돈을 빌려서 튤립 알뿌리를 산 사람들은 빚을 갚지 못해 밤사이 도망가기 일쑤였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만 생각했던 튤립이 한낱 양파만도 못해졌지요. 튤립 가격은 낮게는 20분의 1에서 높게는 1000분의 1 이상으로 떨어졌어요. 그토록 신비롭게 보였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의 줄무늬는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변종이라는 사실도 밝혀졌고요. 튤립 때문에 웃고 울었던 네덜란드인들은 '유럽 최강의 부국(富國)'이라는 이름을 영국에 넘겨주어야 했답니다.

이후 튤립은 네덜란드 토양에 맞는 새로운 종이 개발되어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어요. 게다가 세계 제1위의 꽃 수출국이 된 네덜란드에 지금도 부를 가져다주고 있지요. 겨울 추위를 이겨낸 봄꽃이 짧은 순간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가 사그라지는 모습은 우리에게 인생의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 출처:조선일보 2014,04,18[숨어있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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